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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간편식 전성시대-‘이젠 집에서 외식’ 연평균 20% 급성장 라면·외식업 초토화…건강식 진화는 숙제

  • 노승욱 기자
  • 입력 : 2018.08.24 08:16:41
  • 최종수정 : 2018.08.24 09:20:34
가정간편식(HMR, 잠깐용어 참조)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 증가, 폭염 등으로 간편식 수요가 급증한 데다 최저임금·임대료 인상 등으로 외식 물가가 급등하는 데 따른 반사이익도 누린다. 단, 원재료 신선도 미달, 높은 나트륨 함량 등에 대한 우려도 적잖아 건강식 HMR 진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10년 7700억원이었던 국내 HMR 시장 규모는 2013년 1조원, 2014년 1조5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3조원으로 커졌다. 3년 사이 2배 성장한 것으로, 연평균 성장률이 20%가 넘는다. 올해는 4조원을 넘길 전망이다. 최근 성장이 정체된 유통업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급성장이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HMR 시장이 성장 초입 국면이라고 말한다.

“현재 한국의 HMR 시장 규모는 일본의 1990년대 초반 수준이다. 지난 10년간의 연평균 성장률 19%가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10년 뒤 국내 HMR 시장 규모는 약 1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일본 HMR 시장 규모가 1조9000억엔임을 감안하면 공격적인 추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HMR 시장 성장세가 1990년대 일본의 성장세 대비 3배 이상 빠르고, 도시락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 비해 배달문화가 발달한 한국 시장에서 HMR의 대체재 잠식 효과가 더 빠를 것이며, 관련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가 시장 규모를 더욱 키울 수 있어 무리한 추정은 아니라고 본다.” 조상훈 삼성증권 애널리스트의 분석이다.



▶가정간편식 빅뱅, 왜?

▷가성비·품질 향상·배송·폭염 주효

가정간편식 수요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가격이 더 저렴하고 집 앞까지 배송이 되는 데다 최근 폭염으로 장보기가 힘들어진 것도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롯데마트의 올해 1~6월 가정간편식 전체 매출 성장률 분석 결과, 온라인몰 가정간편식 매출이 오프라인 매출 대비 3배가량 높은 25.2%를 기록했다.

강기천 롯데마트 HMR팀장은 “전국적으로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며 온라인몰을 중심으로 가정간편식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티몬 슈퍼마트도 7월 1일부터 8월 13일까지 즉석·간편식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44% 증가했다. 위메프는 올해 1~7월 간편식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11.7%, 2016년 동기 대비로는 235% 급증했다.

이충모 티몬 슈퍼마트 매입본부장은 “7월부터 폭염이 지속되면서 더위에 지친 고객이 집에서 요리를 꺼리는 점이 요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농수산 식품 물가도 오르면서 합리적인 가격에 빠르게 조리 가능한 간편식을 많이 찾는 추세다”라고 전했다.

윤다혜 위메프 가공식품팀장은 “즉석밥, 냉동만두, 냉동돈가스, 냉동피자, 떡갈비 등 냉동식품(지난해 동기 대비 올 상반기 매출 증가율 43%)과 3분카레 등 레토르트 식품(38%)의 매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특히 40~60대 고객의 구매 증가율이 높은 편이다. 즉석죽은 전자레인지에 데워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 직장인이나 학생 자녀를 둔 시니어 등 40대 이상 고객이 식사 대용 목적으로 많이 구매하는 추세다”라고 전했다.

오프라인에서는 편의점과 함께 O2O (Online To Offline) 서비스를 통한 ‘신선식품 새벽배송’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마켓컬리는 지난 7월 새벽배송 서비스 ‘샛별배송’ 주문 건수가 전월 대비 19% 증가했다. 특히 가정간편식 매출이 26% 증가했고, 보양식과 평양냉면 메뉴는 2~3배 급증했다.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는 “기록적인 무더위로 야외 활동을 기피하는 데다 집에서 번거롭게 조리하는 것을 꺼려 하는 소비자가 늘며 간편한 샛별배송이 주목받았다”고 전했다.

편의점 CU에서는 올 상반기 반찬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약 50% 증가했다. 냉장반찬 매출이 193% 늘며 성장을 견인했다. 같은 기간 김, 김치가 10~20% 신장한 데 비하면 평균치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CU 관계자는 “김치, 장아찌 등 한정적인 상품만 운영되던 편의점 냉장반찬이 최근 제육불고기, 간장새우장, 명란한오징어젓갈 등 다양한 메뉴로 확대되며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2인분으로 상품 규격을 줄이고 가격을 낮춘 것도 주효했다. 원룸, 오피스텔 등 1~2인 가구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고등어구이, 계란말이 등 다양한 소용량 반찬으로 1~2인 가구의 냉장고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올해 유례없는 폭염은 냉면, 보양식 등 특정 상품군의 인기를 끌어올렸다. 신세계푸드의 올반삼계탕은 올해 생산 수량을 지난해보다 20%나 늘렸는데도 예상보다 빨리 11만개가 완판됐다. CJ제일제당의 간편식 냉면도 지난 7월 한 달간 100억원어치 이상 팔리며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22% 이상 성장한 수치로, 간편식 냉면이 월매출 100억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마트에서는 초복을 앞둔 일주일간 보양식이 가정간편식 형태로 더 잘 팔렸다. 닭고기 매출은 지난해 초복 일주일 전보다 15.7% 늘어난 반면, 가정간편식 삼계탕 매출은 이보다 3배가량 높은 57.5% 증가한 것. 식재료를 사서 집에서 해 먹기보다 간편하게 사 먹는 것을 선호함을 알 수 있다.

상황이 이렇자 업계에서는 앞다퉈 가정간편식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CJ제일제당은 ‘햇반’ ‘비비고’ ‘고메’ 등 HMR 브랜드를 앞세워 2016년 처음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예상 매출은 1조9000억원, 2020년에는 국내외 매출 3조6000억원을 달성한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CJ제일제당은 2020년까지 HMR 제품 R&D(연구개발)에만 2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햇반을 최초로 출시한 1996년 12월 당시 CJ제일제당 사내에서조차 ‘맨밥을 누가 사 먹겠느냐’며 반대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이제 즉석밥은 일상식이 됐다. 1997년 40억원이 채 안 됐던 햇반 매출은 지난해 3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어린 시절부터 햇반 이용 경험이 있는 세대가 주요 소비계층 대열에 합류하며 타깃 고객층도 출시 초기 35~45세 주부에서 미혼의 젊은 직장인, 싱글족, 딩크족(무자녀 부부) 등 조금 더 어린 세대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보다 간편한 컵밥이 선호되며 ‘햇반 컵반’ 연매출이 800억원대로 성장했다”고 귀띔했다.

신세계푸드는 올 들어 캠핑용 HMR 개발에 나섰다. 본격적인 캠핑과 바캉스 시즌인 지난 6~7월에 캠핑용 HMR ‘올반숯향불고기’ 판매량이 월 10만개를 웃돌며 월평균 판매량의 2배를 넘어섰다. 이마트는 오는 10월 오프라인에 피코크 전문점을 출점할 계획이다. 치킨 프랜차이즈 BBQ는 가정간편식 온라인 쇼핑몰 ‘비비큐몰’을 오픈해 운영 중이다.

프랜차이즈와 지역 맛집도 자사 대표 메뉴를 HMR 형태로 재가공해 시장에 뛰어드는 추세다. 식객촌, 본죽, 피자알볼로, 장충동왕족발 등이 대표적이다. 미쉐린가이드 원스타 식당인 서울 삼청동 ‘큰기와집’은 인천시와 손잡고 ‘피코크 큰기와집 간장게장’을 출시했다. 남원시와 부안군도 ‘피코크 남원추어탕’ ‘피코크 부안 뽕잎 바지락죽’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지역 맛집을 넘어 글로벌 브랜드까지 HMR 시장에 가세했다. 피코크 관계자는 “티라미수 핑거 케이크(이탈리아), 키시(프랑스), 펑리수(대만) 등 글로벌 디저트 메뉴까지 피코크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피코크 티라미수 케이크는 2016~2017년에 연간 100만개가량 팔려나가며 2년 연속 밀리언셀러 히트상품으로 등극, 현재 1000여개에 달하는 피코크 상품 중 매출 1위를 기록 중이다. 앞으로도 세계 유명 디저트를 HMR 형태로 개발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 증가, 폭염 등에 가정간편식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한 주부가 가정간편식을 쇼핑하는 모습. (매경DB)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 증가, 폭염 등에 가정간편식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한 주부가 가정간편식을 쇼핑하는 모습. (매경DB)



▶프리미엄 HMR 새롭게 부상

▷맛 좋고 가성비 훌륭…품귀 현상도

국내 HMR 시장이 갈수록 성장하며 새로운 트렌드도 나타나고 있다.

우선 프리미엄 간편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간 HMR은 집밥보다 맛없고 몸에도 안 좋은 ‘인스턴트 식품’으로 치부됐다. 외식이 번거롭거나 용이치 않을 때 ‘꿩 대신 닭’ 같은 선택지였다. 요즘은 다르다. 웬만한 외식 메뉴보다 맛있고 가성비도 뛰어난 제품이 많아 외식과 대등하거나 더 좋은 선택지로 선호된다. 조상훈 애널리스트는 “최저임금 등 각종 비용 상승으로 외식업은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외식의 대체재인 HMR의 수요는 더욱 늘고 추가적인 가격 인상 여력도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 왕교자’와 프리미엄 HMR 브랜드 ‘고메’ 등이 그렇다. 식재료를 큼직하게 썰고 함박스테이크, 토마토 미트볼 등 메뉴를 다양화해 냉동식품 고급화를 주도했다는 평가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여름철에는 ‘왕맥(비비고 왕교자+맥주)’이라는 새로운 안주문화를 정착시키며 신규 수요를 창출하고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냉동만두 전체 시장에서 점유율이 42%를 차지, 한때 품귀 현상을 빚기도 했다”고 자랑했다.

메뉴별로는 국·탕·찌개 상품의 인기가 눈에 띈다. 티몬에 따르면 7월 1일부터 8월 13일까지 국·탕·찌개 상품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74% 급증하며 전체 가정간편식 판매의 35%를 차지했다. 덮밥(28%)·즉석밥(25%)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지난해 매출 비중 순위는 즉석밥(35%), 덮밥(31%), 간편국(21%)이었다.

티몬 관계자는 “국·탕·찌개 상품의 급성장은 합리적 가격으로 집밥 수준의 요리를 즐길 수 있고 조리가 간편한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피자도 최근 주목받는 HMR 메뉴군이다. 국내 냉동피자 시장은 2015년 55억원에서 2016년 265억원으로 1년 새 381% 급성장했다. 냉동피자 시장은 지난해 약 900억원대로 확대됐고, 올해는 1300억원대로 커질 전망이다.

▶외식 지형 바꾸는 ‘HMR 쇼크’

▷라면·식당 불똥…高나트륨은 숙제

한편 간편식과 대체재 관계에 있는 라면 등 인스턴트 식품업계와 외식업계는 HMR 시장 성장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라면 시장은 HMR에 밀려 역성장에 들어갔다.

한국농수산유통공사에 따르면 소매점 라면 매출은 2016년 2조1613억원에서 지난해 2조976억원으로 3% 감소했다. 특히 봉지라면 하락세가 뚜렷하다. 봉지라면 매출은 2016년 1조4363억원에서 2017년 1조3322억원으로 7.2%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컵라면 매출은 7249억원에서 7654억원으로 5.6% 성장했다. 라면도 집에서 직접 끓여 먹기보다 뜨거운 물만 부어 간단히 해 먹는 것을 선호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외식업이 70%에 달하는 자영업도 비상이 걸렸다. 소비자가 식당에 오지 않고 집에서 HMR로 끼니를 때우니 외식 수요가 급감하고 있어서다. 주윤황 장안대 유통경영과 교수는 “HMR은 앞으로 메뉴를 다양화하며 지속 성장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영업자가 똑같이 메뉴 다양화로 대응한다면 가성비 경쟁에서 밀려 필패할 수밖에 없다. 다품종·가성비 전략으로 가는 HMR에 대응하려면 식당은 소품종 특화 메뉴 개발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HMR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적잖다. 무엇보다 높은 나트륨 함량 등 건강식으로서의 결함이 문제다. 업계에 따르면 상당수 가정간편식의 한 끼에 포함된 나트륨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1일 나트륨 권장량 2000㎎에 육박한다. 특히 식습관 형성기에 있는 아이들은 칼슘은 적고 나트륨과 지방이 많은 HMR 섭취에 익숙해질 경우 소아비만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김세영 KDB산업은행 산업기술리서치센터 연구원은 “미국에서는 유기농, 글루텐 프리, 채식주의 등 다양한 건강 식습관에 맞춘 HMR 메뉴가 개발·판매되고 있다. 국내 소비자는 여전히 100% 천연재료 식료품을 선호하고 저염 습관을 가장 많이 실천하고 있는 만큼, 메뉴 개발 시 원재료의 신선도와 나트륨 함량 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72호 (2018.08.22~08.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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